구원의 영역과 시제
빌 3:12-21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바울이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은 부활이었다(11절) 우리는 온전히 이룬 자들이다(15절) 뭔가 좀 안 맞는 느낌이 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은 구원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부활은 보장된 것이 아닌가?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러한 신학적 충돌을 해결하려면 먼저 구원의 영역과 시제를 이해해야 한다. 구원은 3 영역과 3시제가 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는 용서받았다.(justification) 하지만 이 구원은 영에서 먼저 일어난다. 그리고 혼은 순종하므로 변화되어 간다. 이것을 성화(sanctification)라고 한다. 마침내 우리의 몸도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것을 영화(glorification)라고 한다. 칭의는 이미 일어난 완료형, 성화는 현재 진행형이며, 영화는 미래에 완성될 것이다.
칭의는 불완전한 구원이 아니다. 영 안에서 일어나는 온전한 구원이다. 죄, 질병, 가난, 갈등으로부터 온전한 구원을 얻었다. 의, 건강, 재정의 복, 좋은 인간관계의 복이 이미 우리의 영 안에 있다. 이것을 풀어놓기 위하여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요 성화의 삶이다. 기독교 신앙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구원을 풀어놓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다.
주님, 나의 엣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함께 십자가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고, 나는 그리스도 안에 삽니다. 이미 내 안에 온전한 구원이 임했습니다. 죄 대신 의가, 질병 대신에 치유가, 가난 대신에 부유함이, 갈등 대신에 평화가 임했습니다. 말씀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나는 의롭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부유하다. 나는 행복하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