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 치유하기

나귀를 타신 주님, 백마를 타신 주님

양자역학으로 푸는 성경 2024. 3. 13. 10:30

나귀를 타신 주님, 백마를 타신 주님

막 11:1-11

2-3: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주님은 걸어서 오시다가 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는가? 주님은 의도적으로 나귀를 타셨다. 이것은 예언적 의미를 담고 있다. 예언자 스가랴는 메시아가 나귀 새끼를 타고 임한다고 했다.

구원을 베풀 왕]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 끼니라""

세상 왕들은 교만과 정복을 상징하는 백마를 타고 온다. 하지만 메시아는 겸손과 평화를 상징하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왕일수록 자신을 과시한다. 진정한 왕은 자신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 무슨 옷을 입어도, 어떤 탈 것을 타도 그 권세와 영광에는 차이가 없지 때문이다. 주님의 권세와 영광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 따로 포장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은 백마를 타고 오신다. 그때는 평화를 위해서 오시지 않고 악한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실 것이다.

19:11: "[백마를 탄 자]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을 영접할 것이지, 백마를 타고 오는 예수님을 만날 것이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나귀를 타신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채  백마를 타신 주님을 만나는 것이 두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주님, 세상 왕들은 백마를 타고 위협적으로 과시적으로 임하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가리려고 화려한 의상과 큰 짐승을 타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과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보장하시는 주님의 권세와 영광은 포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 주시고 동일한 권세와 영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 예수님 이름과 함께 주신 권세와 영광을 복음을 위하여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멘~